대중문화 속, 호랑이가 내려온다

검은 호랑이의 해


2022년은 임인년 범띠 해. 10개의 천간 중 임(壬)이 검은색을 띠는 물(水)을 상징하므로 검은 호랑이띠라고도 한다. 동물원에서 보았던 육중한 몸집의 리얼 호랑이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가 편하게 즐기는 대중문화 속에서도 호랑이를 찾을 수 있다. 호랑이가 주인공인 새해를 맞이하여 대중문화 속 다양한 호랑이를 만나보자.


[김홍도 송호도(1770),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소장]


호랑이가 가진 여러 의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호랑이만큼 친근한 동물도 없을 것이다. 열에 아홉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동물로 호랑이를 떠올릴 테니까. 다만 호랑이가 우리나라 상징 동물로 공식 지정된 적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국화는 무궁화지만 이 외에 공식적으로 지정된 국수나 국목, 국조는 공란에 가깝다. 


그럼에도 호랑이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귀한 동물. 단군 할아버지 시절 ‘곰과 호랑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모양도 호랑이와 비슷하고, 어릴 적 수없이 들은 전래동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하니 말이다. 전래동화 속 호랑이가 보여주는 모습은 한마디로 변화무쌍하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무서운 멘트를 날리면서도, 꾀 많은 토끼에게는 번번이 속아 넘어가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는가 하면, 곶감에 벌벌 떠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웃음을 선사한다. 그만큼 우리와 가깝다는 방증이다. 


[맹호도,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랑이는 다른 말로 범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범’은 호랑이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이와 달리 호랑이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그중 하나가 범과 이리를 합쳐 ‘호랑’이라고 부르던 것이 호랑이로 굳어졌다는 설이다. 호(虎)는 한자로 호랑이를 뜻하고, 여기에 이리를 뜻하는 랑(狼)이란 한자가 덧붙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분류로 보면 호랑이는 식육목 고양이과 표범 속에 속하는 포유류로, 학계에서는 500만 년 전에서 200만 년 전, 시베리아, 중국 북동부 및 한반도 등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호랑이는 분포 지역에 따라 시베리아호랑이, 중국호랑이, 벵갈호랑이, 수마트라호랑이 등 여덟 종으로 구분하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한국호랑이나 백두산호랑이라 부르는 시베리아호랑이는 남한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전 세계적으로도 시베리아호랑이는 멸종위기종이다. 그렇다고 호랑이가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우리 대중문화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 

참고문헌 : 이어령 [십이지신 호랑이] 생각의나무  



스포츠계의 히트 아이템, 호랑이 상징

호돌이 ⓒ1983 SLOOC  / 수호랑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 엠블럼 ⓒ 대한축구협회


호랑이는 대중문화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시대에 따라 호랑이가 주는 대중적 이미지도 다양하다. 88 서울 올림픽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MZ 세대들에게 호돌이는 국사책에서나 나올 올드한 캐릭터에 지나지 않겠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호돌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호랑이는 스포츠계의 단골 손님이기도 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도 호랑이에서 나왔다. 새하얀 털을 자랑하는 백호 ‘수호랑’은 반달곰을 본 따 만든 평창 동계 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다비’와 사이좋게 짝을 이뤘다. 야구팬이라면 기아 타이거즈의 마스코트 호랑이도 빠질 수 없다.


스포츠 심볼로 영역을 넓히면 호랑이는 수도 없이 많다. 대한축구협회의 엠블럼에도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지난 2020년, 대한축구협회는 19년간 사용해 온 호랑이 엠블럼의 새 디자인을 발표했다. 용맹한 백호의 날카로운 눈매와 무늬를 강조했다고 한다. 일부 고양이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국제경기가 있을 때마다 우리는 가슴에 호랑이를 단 대표팀을 보며 함께 응원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다시 부는 호랑이 바람

뚱랑이 ⓒMUZIKTIGER


MZ 세대들에게는 88 올림픽의 호돌이보다는 무직타이거의 대표 캐릭터 ‘뚱랑이’가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무직타이거는 대기업 퇴사 후 디자이너 부부가 공동으로 만든 브랜드의 이름. ‘무직’이란 한자어 그대로 직업이 없다는 뜻인데, 사랑스러우면서도 엉뚱하고 비주얼적으로는 뚱뚱한 호랑이, 이른바 뚱랑이를 출시하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최근에는 글로벌 식음료 기업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지난 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던 이날치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범 내려온다'도 빠지면 서운하다. 국악이라는 틀을 깨고 화려한 의상과 개성 넘치는 댄스, 강한 비트와 경쾌한 랩으로 ‘조선 힙합‘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으니까. 범 내려온다는 ‘토끼와 자라’ 이야기로 유명한 판소리 수궁가에서 나왔다. 자라가 토끼를 부른다는 게 호랑이로 잘못 부른 뒤, 산속에 누워 있던 호랑이가 내려오자 자라가 벌벌 떠는 장면을 담고 있다고 한다.



범내려온다 ⓒYouTube 한국관광공사TV


우리나라 대중음악에서 호랑이가 주목받은 게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에는 한국의 힙합 대중화를 이끈 드렁큰타이거가 활동하기도 했다. 그룹의 멤버로 활동했던 래퍼 타이거JK도 이름에 호랑이가 있다.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신사동 호랭이도 활동명에 호랑이가 붙었다.


사람 이름으로 호랑이를 쓸 만큼 우리가 호랑이와 가까운 이유는 아주 오래전 호랑이를 산군이나 산왕, 산신으로 여기며 숭배했던 오래전 민속 신앙과도 관련이 깊을 것이다.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여러 신화와 민담에 호랑이가 등장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호랑이 자체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용맹한 기질 때문에 우리가 호랑이를 유독 닮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른다. 서양에는 사자, 동양에는 호랑이가 있다는 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이젠 동물원 외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호랑이. 임인년 범띠 해를 맞아 더 용감하고 맹렬하게 호랑이 닮은 한 해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MZ 세대라면 뚱뚱한 호랑이 ‘뚱랑이’ 처럼 원하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꿈을 꿔도 멋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