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다시 만나는 시간

포켓몬빵, 옛드의 귀환


혹시 ‘오픈런’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말 그대로 ‘열자마자 뛴다’라는 뜻인데요. 상점 앞 노숙도 불사한 몇몇 명품 브랜드의 인기를 나타내는 신조어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쓰레빠런’의 시대! 


제대로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뛰쳐나가야만 하는 최정상급 인기의 주인공은 바로 명품이 아닌 [포켓몬빵]입니다. 2022년 2월 24일 재출시한 ㈜SPC삼립 포켓몬빵은 재출시 한 달여 만에 역대급 인기를 누리는 ‘학창 시절 추억 소환’의 대표 아이콘입니다. 


순간의 인기몰이인지, 추억 소환이라는 대유행의 시작일지 세상읽기에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포켓몬빵 안 팝니다.”(아니, 사실은 못 팔아요)

지역카페, SNS, 편의점 어플의 재고 현황을 통해, “어디? GS25?!”, “홈플러스?!”라는 소문이 뜨기 시작하면, 즉시 품절이 된다는 전설의 포켓몬빵. 포켓몬? 내가 알고 있는 그 포켓몬? 예전에 나왔던 그 빵을 말하는 건가? 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신은 40대가 훌쩍 넘은 나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포켓몬 만화는 현재도 방영 중이며, 2022년 3월 30일 새 에피소드 방영도 시작되었기 때문이죠. 어떻게 동일한 시대에서 누군가는 학창 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데 여념이 없는데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추억으로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포켓몬빵의 인기에는 여러 가지 절묘한 요소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30대라면 본인이 어린 시절 먹었던(혹은 모았던) 포켓몬빵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어서, 어린 자녀를 둔 40대 부모는 아이들 등쌀에 밀려 쓰레빠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60대 이상으로 간다면 손자손녀에게 주는 선물용으로 필요합니다.


SNS 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포켓몬 빵’, ‘띠부씰’ 게시물

출시 일주일 만에 150만 개가 팔렸다는 대유행의 시작은 ‘추억 소환’입니다. 그러나 추억 소환이 전 세대를 관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넓게 봐도 30대 전후로 한정된 유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포켓몬빵의 유행을, 어린 시절 돈이 없어 마음껏 사 먹지 못한 ‘어른이’들이 이제는 ‘이 정도는…’ 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기에는 포켓몬빵 외에도 수없이 많은 추억 소환 아이템들이 있기 때문이죠. 마케팅적으로는 해당 제품과 관련된 추억이 있어야 하고(40대 중반 이후가 소외되는 지점), 이를 대표하는 실질적인 제품이 있어야 하며(포켓몬빵), 띠부띠부씰(‘떼었다 붙였다’ 스티커 모으기)라는 어마어마한 동력이 더해진 다음, 인스타그램 인증샷과 해시태그의 부스터가 마지막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유사한 추억 소환 아이템이면서도 소외되고 있는 CU 미니바둑초콜릿의 저조한 판매가  그이유가 될 것입니다.  



추억을 소환하는 데에도 나이 제한이 있고, 시대의 대유행에도 입장 제한이 있다면 어쩌면 지금의 유행은 그들만의 축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억 소환’이라는 문화에 이미 세대 간 온도 차가 있으며, 특정 세대의 전유물로 보입니다. 쓰레빠를 신고라도 뛰쳐나갈 수 있는 의지와 인스타그램 인증이 필수인 세대, 159종이나 되는 띠부씰의 종류도 외울 수 있는 세대에게 허락된 유행이지요. 서글픈 마음이 들더라도, 퇴근길에 편의점을 살며시 들러 보세요. 어쩌면 지금 막 입고된 따끈따끈한 포켓몬빵이 ‘뮤’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깐요. (*뮤는 최고인기의 띠부띠부씰이고 높은 가격에 중고거래도 가능하다.)


[옛드]의 귀환, 다시 돌아온 대장금

추억 소환은 즐겨 먹던 제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즐겨 보던 드라마와 영상을 다시 찾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은 참으로 신기한 작용원리입니다.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귀신같이 찾아서 알려주는가 하면 전혀 관심 없던 주제마저 최고의 관심사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은 내 관심사를 거슬러 어느새 10년 전 드라마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MBC와 SBS는 몇 년 전부터 자사 프로그램으로 방영되었던 옛날 드라마의 요약 편을 콘텐츠로 만들어 유튜브를 통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제작비 삭감과 거리 두기 운영으로 발생한 코로나 기획의 일환으로, 이를 반가워하는 이는 기대 이상으로 많았습니다. [사랑과 전쟁], 김수현 작가표 드라마, 대한민국 막장 드라마의 대시작을 알린 [아내의 유혹]까지. 최근에는 MBC에서 2003년 제작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을 업로드하며 유튜브 구독자 300만 명을 달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옛드 다시보기의 유행은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까요? 

다시 만난 과거가 반가운 옛드가 방영하던 시대의 세대뿐 아니라 옛드는 요즘 젊은세대도 즐겨봅니다. 예전 드라마를 요즘 시대의 가치로 재해석해서 다시 보는, WATCH가 아닌 REVIEW의 재미를 MZ세대가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OTT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옛날 드라마들 / 이미지: KBS, MBC, SBS


그 시절에는 당연했을 가치관이나 문화가 지금의 관점에서 돌아보면 얼마나 구태의연하거나 진보적인지 새롭게 평가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한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옛드 콘텐츠에는 항상 따라붙은 파생 콘텐츠가 있는데, 바로 옛드 콘텐츠의 댓글만 모아보는 리뷰들입니다. 우리가 열광했던 대장금의 주인공 장금이의 삶은 어떤가요? 그 시절에 우리가 보았던 장금이와 2022년에 다시 보는 장금이는 무척 다릅니다. 장금이의 MBTI는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장금이에게 존재했던 엄청난 스토리텔링 능력과 면접 프리패스라는 외모 또한 인기의 한 몫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지점이 옛드의 인기가 포켓몬빵과 결을 달리하는 부분입니다. 포켓몬빵이 여러 가지 요소가 결합된 자기만족+수집 성격을 띤 유행이라면, 옛드의 유행은 재미있었던 옛날 드라마를 다시 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1차적 재미와 더불어, 생각을 공유하고 인물을 재해석하는 수많은 댓글 드립의 향연을 누리는 요소가 결합된 것입니다. 옛드를 보게된 시작이 다르고 다른 재미를 느끼더라도 같은 옛드를 본 사람들은 세대간 대화가 가능합니다.

“너두, 이 드라마 알아?’’ 


OTT 서비스로 넘어가면 어떨까요?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2000년에 제작 발표된 홍콩 영화 [화양연화]를 업로드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른바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 열풍이라 할 만한 이슈 몰이입니다. 포켓몬빵과 함께했던 10대 청소년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봤던 아련한 홍콩 영화의 추억. 이제는 극장이 아니라 내 손 안의 스마트폰이지만, 추억 소환이라는 주제 안에서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되어 재개봉한 영화들 / 이미지: 네이버영화


같은 추억 소환이라고 해도 조금씩 다른 양상과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대 간 단절의 또 다른 원인이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창 시절을 함께한 추억을 되살려서 보고 즐기고 누린다는 점은 분명 새로운 문화입니다. 우리 곁을 스쳐 간 여러 가지 문화 콘텐츠 중에서 선택된 문화 혹은 아이템이라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죠. 이미 모든 것을 갖춘 세대에서 미래를 바라보기보다 과거의 추억한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저 ‘추억’을 소환해서 다시 불러보는 것이라면 그 시절이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라면, [화양연화]와 같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